공감의 언어
오늘도 많은 대화를 했다. 코로나19로 신입 직원 연수가 비대면으로 진행되어 본가에서 지내다 보니 매일 아침, 점심, 저녁을 먹으며 가족들과 대화를 나눴다. 주로 대화의 내용은 ‘먹고 있는 음식이 어떻다’ 또는 ‘지금 받고 있는 연수가 어떻다’와 같이 무겁지 않고 일상적인 것들이었다. 코로나19로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진 못했지만, 친구들과 카카오톡을 통해 원래는 대화로 나누던 내용들을 텍스트로 주고받았다. 오늘 친구와 나눈 채팅은 친구가 세탁소에 신발을 맡겼는데 신발이 찢어져서 왔다고 하서 그 말에 슬픔과 분노, 그리고 약간의 세탁소 욕으로 반응해 주었다. 밤이 되고 책 『공감의 언어』를 읽으며 오늘 내가 나눴던 대화와 이전에 했던 대화에 대해서 기억을 더듬어보았다. 그동안 잘못하고 있었던 부분들이 속속 떠올랐고, 앞으로 어떻게 고쳐나가야 할지도 책을 통해서 알게 되었다.
먼저, 대화의 시작을 열기까지의 여정이 험난했다.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먼저 말을 거는 것을 참 어렵고 망설여진다. 처음 상대에게 말을 거는 것을 주저하는 이유는 다른 어떤 이유보다는 두려움이 크다. 처음 보는 상대와의 어색한 공기가 두렵고, 혹시 말을 걸었는데 상대의 반응이 미적지근할까 봐서도 두렵다. 최근에도 이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합죽이가 되었던 적이 있다. 1월 4일 한국은행 신입 조사역들을 위한 입행식 겸 연수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당시 잠깐 10분 정도 공식 일정이 없는 쉬는 시간이 있었고, 인사팀의 한 분이 그 시간 동안 다른 동기들과 인사도 나누고 사진도 찍으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화장실을 가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일어서지 않았고, 숨 막히는 공기 속에서 아무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그 후 본격적으로 연수가 시작되고 동기들이 모두 모인 단체 채팅방이 생겼다. 그러자 동기 중 한 분이 입행식 당일 본인이 속했던 조에서 찍은 단체사진을 올렸다. 그 사진을 보니 입행식은 나와 동기들에게 다신 오지 않을 순간인데, 사진으로 남겨두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컸다. 그때 용기를 내어 앞자리 동기에게 말을 걸고, 같이 사진 찍자고 아니면 같이 찍는 것이 부담스러우면 저라도 찍어달라고 하지 못한 것이 후회가 됐다.
두려움을 이길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상황은 충분히 두려울 수 있는 상황이며, 그 두려움을 인정하는 마음가짐이다. 그 두려움은 나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며, 그동안 수많은 대화를 이끌어가본 저자에게도 그 두려움이 있다고 하니,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다.’, ‘실수할 수도 있다.’라고 스스로를 다독여가며 용기를 낼 수밖에 없다. 두려움을 인정하는 마음으로 상대와의 대화를 시작한다면, 그 상대도 충분히 이해할 것이다.
공감하는 대화를 위해 고쳐야 할 또 다른 문제점은 대화 그 자체보다 대화에 참여할 타이밍을 재는 것에 에너지 소모를 많이 한다는 점이다. 저자는 소통에 있어서의 ‘에고’는 말할 기회를 엿보면서 듣기에 집중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말하고 싶은 욕구가 머릿속을 상대의 관심사가 아닌 본인의 관심사로 가득 채우고, 상대의 이야기 듣기를 방해한다. 한 번은 대학교 친구들과 새로 출시된 휴대폰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유용하게 사용하고 있던 카메라 세부 기능을 그 대화에서 말하고 싶었다. 다른 친구들의 말이 끝나자 잽싸게 알고 있던 이야기를 꺼냈다. 잘 알고 있음을 뽐내기 위해서, 또 그 대화에 끼어 함께하고 있다는 인정을 받기 위해서 친구들의 말을 귀담아듣기보다는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던 것이다.
이 소통의 ‘에고’를 해소하기 위해 필요한 것 역시 위에서 두려움을 이겨내는 것과 마찬가지로 마음가짐이다. 상대의 이야기를 진정 궁금해하는 마음으로 듣고자 한다면 이야기를 꺼낼 틈이 없을 것이며, 설사 말하고자 하는 욕구가 강하게 든다고 하더라도 그 욕구를 억누르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이런 마음가짐과 실천은 이루어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저자 역시 에고를 내려놓는 것이 듣기가 어려운 이유라고 했다. 그러나 이 또한 어려움을 인정하고 스스로 고쳐나가야 할 부분이다.
마지막으로 고쳐야 할 문제점은 껄끄러운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예전부터 언성이 높아지는 말다툼을 하는 게 싫었고, 그래서 그런 상황이 오는 것 자체를 차단하기 위해 상대에게 반대하거나 상대를 비판하는 껄끄러운 말을 입 밖으로 뱉지 못하고 삼키기만 했다. 한 번은 교양수업의 과제로 동영상을 만드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팀원과 동영상의 전체 전개에 대해 토의했는데, 그 팀원이 제시했던 전개의 순서가 어색했다. 그러나 그 의견에 비판을 하는 게 불편해서 그냥 괜찮다고 하고 동영상 제작에 착수했다. 그 후 교수님께 중간 피드백을 받으니 전개 순서가 이상하다며 수정하는 게 좋겠다는 결과를 받았다. 결국 영상의 많은 부분을 수정하여 최종 제출물을 만들어야 했다. 만약 그때의 불편함을 이기고 의견에 비판하여 같이 토의했더라면 피할 수 있었던 먼 길을 돌아간 것이었다. 이 경험 이후 논쟁이 더 나은 결과를 위해 필수적임을 깨닫게 되었다.
대화와 커뮤니케이션의 중요성을 담은 글들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지만, 막상 그 능력을 어떻게 기를 수 있는지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을 담은 글은 많지 않다. 그러나 『공감의 언어』를 읽으면서는 현재 나의 대화에서 문제점이 무엇인지와 어떻게 그 문제점들을 고쳐나갈 수 있는지도 알 수 있었다.
사람은 입을 꾹 닫은 채 혼자 살아갈 수 없다. 특히 복잡한 현대 사회에서 그 어떤 프로젝트도 혼자 진행할 수 없으며 타인과의 협업이 필수적이다. 타인과 함께하는 프로젝트의 성과는 개개인의 능력치도 영향을 미치겠지만, 그보다도 소통이 얼마나 잘 되는지의 영향력이 더 지대할 것이다. 앞으로 어떤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갖게 될지는 위에 적어놓은 것들을 얼마나 실천하여 지금의 문제점을 고치는지에 달려있다. 앞으로도 처음에 먼저 대화를 시작하기 주저하며 자기 이야기만 하려 하고 껄끄러운 말들은 회피할지. 아니면 먼저 대화를 시작해서 타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다소 불편하지만 필요한 말도 할지. 어떤 결과를 갖게 될지는 이제 선택에 달려있다.